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앙투아네트(베르사이유의 장미) (문단 편집) === [[한스 악셀 폰 페르젠(베르사이유의 장미)|페르젠]] === 처음이자 평생동안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 왕세자빈 시절 파리 방문때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오스칼]]만 데리고 신분을 숨긴체 참석한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 첫눈에 반한다. 사랑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정략 결혼을 온 자신의 처지와 소극적인 남편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외로운 상태에 있던 마리는 매력적인 페르젠에게 바로 빠졌으며 진짜 신분(프랑스의 왕비/스웨덴의 귀족)을 알게 된 뒤에도 페르젠이 알헌을 핑계로 자주 왕비와 만남을 가지면서 이 둘은 지고지순하게 사랑을 키워왔다. 그러나 결국 불륜은 불륜이었고 가뜩이나 프랑스에서 오랜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외국여자라는 편견이 박힌 상황에서 페르젠과의 추문까지 일으키자 자신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팜플렛까지 돌아다니며 조롱당하고 왕비로서의 권위도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오스칼의 조언으로 페르젠이 프랑스를 떠나지만 문제는 여기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젠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과 외로움 때문에, 폴리냑 부인 등의 간신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국정을 멀리하고 패션과 도박에 빠져 사치하면서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깎아 먹고 만다. 거기다가 [[루이 16세]]의 무능과 아내의 잘못된 행동을 방임하는 우유부단함이 겹치면서 마리의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결국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이란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마리는 나라를 망치는 악녀이자 욕받이로 낙인찍히고 만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신을 차리고 페르젠의 조언대로 간신들을 멀리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왕실을 향한 프랑스의 여론은 떨어질대로 떨어지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도 다른 왕족과 귀족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반면, 페르젠만은 끝까지 자신과 루이 16세의 곁을 지켜주자 그에게 더욱 의지한다. 이후 페르젠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가족들과 함께 [[바렌 사건|바렌을 거쳐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도주를 시도하지만]] 중간에 루이 16세의 강권으로 헤어지게 되자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바렌으로 도주하는데 실패하고 파리로 끌려가 튈르리 궁에 유폐된 자신을 페르젠이 목숨을 걸고 변장한 채로 찾아오면서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지만, 이미 [[처형| 루이 16세와 자신의 최후는 정해져있었고]]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치 않으니 차라리 왕비로서 아름답게 최후를 맞이하겠다며 페르젠과의 도피를 거절하면서 영원히 헤어지고 만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 자신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페르젠 역시 그녀의 사후 국민들에게 가혹한 정치가로 돌변하고 이로 인해 원한을 산 스웨덴의 국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일단 장본인들은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했고 어린 나이에 시집간 타국에서 힘들어 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페르젠과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심적인 위로를 주었을지는 몰라도, 결국 본질적으로는 부도덕한 불륜 관계에 불과했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저지른 수많은 실책들과 마찬가지로 일국의 왕비로서도 해선 안될 짓이었다.[* 과거 절대 왕정시대에서 왕비의 불륜은 그냥 사생활적인 문제가 아니라 '''반역죄'''로 취급되었다. 내연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탁란|왕의 자식으로 속여서]] 후계자로 내세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캐서린 하워드]], [[캐롤라인 마틸다]],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불륜 문제로 이혼당하거나 처형당한 왕비 및 왕세자비다.] 결국 페르젠과의 불륜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과 입지에 악영향만 주고 그녀의 몰락에도 지대한 영향[* 프랑스 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과 입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이유인 폴리냑 백작부인과의 관계의 계기가 바로 페르젠이였기 때문.]을 끼친 거야 말할 것 없고 두 사람의 사랑 아닌 불륜으로 애꿎은 아들 [[루이 17세|루이 샤를]]까지 페르젠의 사생아 루머에 시달리며 온갖 뒷담화와 모욕을 당해야만 했으니[* 더구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남 루이 조제프가 불치병에 걸려 루이 샤를이 차기 왕세자로 지목되자 안그래도 왕위를 노리고 있던 숙부 [[루이 18세|프로방스 백작 루이]]와 [[샤를 10세|아르투아 백작 샤를]]은 아예 공식석상에서 루이 샤를의 정통성을 대놓고 조롱하고, 나중에는 소문이 퍼지다 못해 루이 16세에게마저 익명으로 루이 샤를은 페르젠의 아들이라고 고발하는 편지까지 올 정도로 루이 샤를의 정통성을 흠집내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마리 본인의 심적인 위로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도움되지 않은 관계였다.[* 왕실을 가장 지지해야할 귀족들도 마리를 공식석상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대놓고 비난했으며, [[바렌 사건]]이 실패한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 [[루이 17세|루이 샤를]]을 페르젠과의 사생아라고 조롱하거나, [[루이 16세]]의 처형 이후 재판에 회부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검사측이 바렌 사건을 지원해준 사람이 페르젠이라고 캐묻는 걸 보면 두 사람의 불륜은 프랑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